머리를 드디어 잘랐다. 머리를 묶으면 '까페 뤼미에르'의 여주인공과 비슷하다고해서(물론 헤어스타일만ㅜㅜ), 나는 이제 '요코'가 되었다.
바로 이 머리. 뭐야 그러고보니 엄청 흔한 스타일이네. 모두가 요코로구나. 에헤라디야.
쩝. 어쨌든 도라라는 이름을 딱히 버리고 싶은건 아니고, 뭐 도라요코라고 해야겠다. 좀 지루한가? 코요라도라고 할까? 어려운가?도요라고할까? 도요새같은가?도요타같은가?

어제 오늘 정말 행복했는데,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보니 매 끼니 아주 맛있는 걸 흡족스럽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조조로 올미다를 보고, 커피빈에서 더블초코머핀이랑 얼티메이트 모카 화이트 어쩌구저쩌구를 먹었는데, 아 베이글도, 거의 기절초풍할만큼 맛있었다. 특히 더블초코머핀 같은 건 너무 비싸서 함부로 못 먹던 것이었는데 최근 어쩌다 먹어보게 된 후 완전 사랑에 빠졌다. 여러 곳의 초코머핀을 좀 더 심도깊게 탐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정돈 만들기도 어렵지 않으니 함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도.
그러고 로돈네 집에 가서 피자와 사과를 먹었는데, 이것은 뭐랄까, 음식 자체의 맛도 괜찮았지만 기대치 못한 뜻밖의 음식에 대한 기쁨이 배가되어.. 맛있었다. 피자빵 바삭바삭. 사과는 아삭아삭.
집에 와서 점심으로는 꽃게탕 남은 것과 그냥 밑반찬을 먹었는데 엄마가 바쁜 와중에 계란 후라이를 해서 밥에다 철퍽 얹어주었다. 기쁘고 행복했다.
저녁 때는 골든커리!를 드디어! 해먹었다! 이 카레는 사실 사연이 있다.
나는 카레를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한다. 좋아하고 잘 먹긴 하는데, 그런걸 심리학 용어로 뭐라그러더라, 일종의 조건반사? 아무튼 '카레=허접한식생활' 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왜냐하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장기간 여행가실 때면 꼭 카레를 대-량으로 해두고 가셨기 때문에, 나와 오빠는 며칠동안 아침점심저녁으로 카레만 먹었기 때문이다. 질리기도 질리고, 엄마의 부재라는 불안정한 상황, 아무래도 빈약한 식단 등등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카레는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 여름 일본에 갔을 때, 동행했던 언니들이 어느 날 카레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익히 먹어본 적이 없는 감동적인 맛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거의 울 뻔했다. 그 카레가 아마 일본의 '골든커리'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예전부터 수입되어왔던 유명한 제품이다. 나는 그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골든카레 골든카레 노래를 불렀더니 엄마가 어느날 사오셨던 것이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밥을 못 먹다가 먹어서 더 맛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날의 카레는 내가 일상적으로 먹던 엄마의 카레와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일단 카레가루자체의 맛이 다르고, 특히 물의 양과 건더기 양의 차이. 엄마는 무슨 요리를 하든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나머지 과도하게 건더기를 넣는 경향이 있다. 엄마의 카레는 고기도, 양파도, 당근도, 감자도, 호박도, 또 뭐들어가더라, 암튼 모든 게 너무 많다. 것도 나름대로 맛있긴 한데.. 음... 밥에 카레를 얹어먹는 게 아니라 카레에 밥을 조금 섞어먹는 듯한 그런 음식이 된다. 그래서 이번엔 엄마에게 맡기지 않고 '절대 정량'을 실천하리라 마음 먹고 정확하게 박스에 써있는대로 양을 맞추었다. (난 원래 라면 물도 계량기로 잰다. 정량추구파.) 아, 고기는 좀 줄였다. 고기는 별로 안 즐겨서. 암튼 그랬더니 정말 끝내주게 맛있는 카레가 완성되었다. 일본에서 먹었던 것보다도 더 맛있었다. 인생이 행복했다.
게다가 오빠가 공유기 사러 같이 가주면 하겐다즈 사준다고해서, 하겐다즈도!
아아아. 오늘은 점심때 홍대 나라비에서 냉우동, 김치치즈가츠동, 알밥을 먹었다. 한톨도 안남기고 다 먹었다. 맛있었다.흑흑. 저녁 땐 ㅅㅅ덕에 무려 스키야키를! 스키야키를! 떡갈비인지 너비아니인지도! 한가지 아쉬운 점은 분당의 명물 떡볶이를 까먹고 먹지 못하고 와버렸다는 것이다. 담에 심심하면 분당가서 먹어야지.
이렇게 해피한 식생활을 하다보니 문득 평생 먹을 복을 어제 오늘 다 써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아,아니겠지? 새로운 한 해의 목표가 너무 시시해서 좀 그랬는데, '맛있는 것을 위해 노력하기'라는 멋진 걸 추가해야겠다. 난 맛있는 게 정말 좋은데 그에 비해 노력이 부족하다. 부지런하게 먹을 복을 만들어가야겠다.

(근데 이 포스터는 진짜 좀 아니다. 너무 아니어서 퍼왔다. 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걸까?)
까페뤼미에르를 생각하다가 왜 갑자기 이렇게 장황한 식도락얘기가?;;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그런 의미에서 또 뜬금없는 궁금증 하나. 극중 여주인공 이름 요코는 어떻게 요코가 되었을까. 요코는 흔한 일본여자이름이긴하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에게 '요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오노 요코일 것이다. 대만인으로서 허우 샤오시엔은 오노 요코를 혹시,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을까? 잠깐이라도 오노요코를 떠올렸을까? 어, 요코라니, 오노 요코와 이름이 같네, 뭐 이정도라도. 아닐 것 같긴 한데 그냥 두 여자를 겹쳐서 생각하는 것은 재미있다. 또 다른 요코들도 찾아보고싶네.
내일은, 그러니까 신년의 첫 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까페 뤼미에르나 재탕 뛰고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원제 가배시광 - 마음을 안정시키고 재정비해서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평온한 한 때. 딱 좋다. 그리고 어느 요코라도 좋다. 아름다운 요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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